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대체 ‘가난한 마음’이 뭘까. 그륀 신부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내적인 자세다. 부처님은 그걸 ‘집착하지 말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마음=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란 얘기다.
이어서 그륀 신부는 ‘하느님’과 ‘젖소’를 대비시켰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나의 윤택, 나의 건강, 나의 평안을 위해서 말이다. 그건 우유를 마시기 위해 젖소를 기르는 것과 같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하느님인 채로 놓아두어야 한다.”
그륀 신부는 ‘가난한 마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사물로부터 자유로운 내적인 자유를 얻는다.”
2.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왜 위로를 받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는 슬프다. 이별할 때도 슬프다. 자신이 추구했던 꿈이 깨질 때도 슬프다. 그럴 때는 슬퍼해야 한다. 자신의 슬픔에 충분히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내적으로 경직되고 만다.”
그륀 신부는 재미난 예를 들었다. “제가 아는 심리학자가 수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아내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합니다. 또 결혼한 사람에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한 여자하고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합니다.” 청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륀 신부는 이유를 설명했다. “삶에선 하나를 선택하면, 늘 하나를 놓치게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놓친 것에 대해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선택한 삶에 대해 정말 감사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고통을 뚫고 나아갈 때 우리는 영혼의 바닥과 만나게 된다.”
3.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독일어에선 이 구절이 “행복하여라, 비폭력적인 사람들!”로 풀이된다고 했다. 그륀 신부는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폭력적이고 가혹하게 다룬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즉각적인 단죄를 한다. 이러한 편협함과 엄숙주의의 근거는 자기 내면의 불안이다”고 설명했다. 그리스어(신약성경이 처음 기록된 언어)로는 ‘온유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온유함’에는 ‘무언가를 모으다’란 뜻이 담겨있다. 결국 온유함은 내 삶 속에 존재하는 모두를 모으고, 모두를 인정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안의 일부만 떼어내서 수용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들은 반쪽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인정할 때 내 안이 넓어진다. 그럴 때 예수님 말씀대로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된다.”
4.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완벽하길 바라고, 모든 걸 장악하길 바라고, 또 언제나 성공하길 바란다. 그런 식의 자기 표상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르게 평가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 삶을 지나치듯이 살게 된다.”
그륀 신부는 “의롭다는 건 나 자신의 본질을 바르게 평가하는 거다. 다시 말해 올바르게 살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고 답했다. 그런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울증이 온다고 했다. “우울하다는 건 자신에 대한 무절제한 요구 때문에 영혼이 도와 달라고 외치는 절규다.”
5.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한 여인이 병석의 어머니에게 약속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간호를 할게요.” 그런데 그 여인이 병이 나고 말았다. 결국 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모셔졌다. 그래도 여인은 날마다 요양원을 찾았다. 그리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약속을 못 지킨 자책감 때문이다. 이 얘기 끝에 그륀 신부는 “이 여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히브리어로 ‘자비’는 ‘모태(母胎)’란 뜻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말한다. 어머니는 자식을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돌본다. 자비도 그런 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자비롭지 못할 때 평가를 하게 된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자비롭듯이 너희도 자비로워라’고 했다.”
6.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그륀 신부는 ‘눈’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의 눈을 본다. 무언가 소유하려는 눈, 남에게 상처를 주는 눈, 탐욕스러운 눈을 본다. 또 맑디맑은 어린아이의 눈도 본다. 때로는 노인들에게서도 그렇게 맑은 눈을 본다. 마음이 평화로운 이의 눈은 맑다.”
그리고 중국 한시의 한 대목을 읊었다. ‘누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소란을 잠재울 고요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륀 신부는 “그런데 모든 사람 안에는 (소란을 잠재울) 아주 순수한 핵심이 들어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떡해야 하느님을 볼 수가 있나?” 그륀 신부는 “마음이 깨끗하다는 건 하느님을 보는 첫 번째 조건이다. 그건 완벽하거나 실수가 없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건 어떤 저의가 없는 것, 어떤 부수적인 의도가 없는 것을 말한다”고 답했다.
7.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그리스어로 ‘평화’는 ‘이레네’다. 그건 ‘조화로운 음악’이란 뜻에서 왔다. 그륀 신부는 “우리 안에는 여러 소리가 있다. 낮은 음과 높은 음, 불협화음과 협화음 등. 평화를 이룬다는 건 그런 소리가 다 함께 울리는 것이다. 조화를 이루면서 말이다. 결국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연결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륀 신부는 우리가 명심할 두 가지 평화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루는 일이고, 둘째는 세상과, 또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일이다. 자기 안에 평화를 이룬 사람만이 자기 주변에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
8.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륀 신부는 ‘박해’에 대한 시선부터 달랐다. “삶의 고통과 힘겨움, 질병 등 박해의 역할을 보라. 그건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몰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깨지고, 부서지는 걸 두려워한다. 그륀 신부는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깨진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하느님을 향해 자신이 열리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안젤름 그륀 신부=1945년생. 독일 베네딕도수도회 소속이다. 저서만 약 300권에 달한다. 전세계에서 14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세계적인 영성가이자, 가장 널리 읽힌 영성 작가로도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