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2. 02:18ㆍ좋은 글, 영화
가을은 어떤가 색일까? 은행나무에겐 노랗고 소나무에게는 파랗고, 대부분의 나무들에겐 울긋불긋하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대체로 울긋불긋한 색으로 온 산을 불태우며 가을을 겨울로 이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럽의 단풍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위도와 계절이 비슷한데도 세상을 불태우기보다 주로 노랗게 만든다. 북미 대륙의 단풍도 울긋불긋한데 유럽만 다르다. 왜 그럴까?
알다시피 단풍 색깔은 겨울이 오는 걸 감지한 나무가 잎으로 보내는 영양분과 수분을 차단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라는 두 색소가 잎 속에 있는데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이 나타나고,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노란색이 된다. 그러니까 유럽의 나무에는 대체로 안토시아닌이 없다는 얘기다.
2009년 핀란드 쿠오피오대 연구에 따르면 안토시아닌은 3500만 년 전쯤 나무들이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독성이 있다는 신호인 데다 이런 물질을 만들면 영양분이 적어져 진딧물 같은 녀석들에게 썩 좋은 먹잇감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울긋불긋한 단풍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진딧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보니 녀석들은 붉은색보다 노란색 나무를 6배나 더 선호했다(영국 임피리얼대 연구). 왜 유럽 나무들은 이렇게 중요한 안토시아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잊을 만하면 찾아온 빙하기 때문이었다. 온 세상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빙하기가 왔을 때 나무들은 씨앗을 이용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 피신했다. 유럽 나무들 역시 그렇게 거대한 알프스산맥을 넘었는데 불행하게도(?) 곤충들은 그렇지 못했다. 덕분에 빙하기가 지난 후 다시 북상했을 때 해충들이 사라져 버려 안토시아닌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는 ‘전통’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아시아와 북미의 나무들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해충들과 싸움을 하느라 해마다 가을을 붉게 물들여 왔고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단풍의 색깔을 결정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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