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기억나세요 ?
1959년 청계천변 판자촌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부지를 디자인 콤플렉스와 다목적 공원으로 전환키로 함에 따라 `고교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운동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대문운동장은 일제 때인 1926년 동대문 옆 성터에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축구장만 건립됐고 이후 테니스장(34년), 수영장(36년), 야구장(59년)이 잇따라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축구장과 야구장이 사라지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명칭이 서울운동장으로 바뀌었고 1984년 잠실운동장이 건립되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변경됐다. 동대문운동장은 잠실운동장에 `국내 대표 축구, 야구장'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각종 국가 대항전 축구.야구 대회가 열리는 등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산실이었다. 1929년 최초의 전국 종합체육대회인 전 조선 종합경기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체육 행사 외에 각종 기념식, 대회, 집회 장소로도 활용됐다. 특히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고교 야구대회는 장안의 화제였다. 축구장은 2003년 3월 폐쇄되면서 임시 주차장과 풍물시장으로 활용되었다. 또 아마추어 야구대회가 열렸던 야구장 역시 공원화와 함께 2009년 초부터 헐리게 되면 서 동대문운동장은 80여 년의 역사를 마치고 사라지게 된다. 과거 동대문운동장 부지는 조선시대에 축성된 서울성곽이 지나는 길이었다. 성곽 250m가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걸쳐 있으며 적 방어를 목적으로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雉) 2곳과 성 밖으로 물을 빼기 위한 이간수문도 있었으나 운동장 조성과 함께 철거됐다.
조선시대 군사 훈련과 치안을 담당하던 하도감(下都監)과 훈련원 터 일부도 부지에 포함돼 있다. 현재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의류 산업과 관련된 재래식.현대식 도.소매 시장이 집적돼 있다.
1960.10.1 신정부 수립 경축식 축하무용
1958년 창경궁. 정부수립10주년기념 고궁개방
1959년 이승만 대통령 84회 생신기념 창경궁 무료개방에 몰린 시민들
1958년 창경궁 수정궁앞 연못에서 아이스하키 경기
1961년 덕수궁 중화전 4.19 1주년 기념 시민위안의 밤
1956년 복구된 보신각. 1953년에 원래 위치에서 약 20m 뒤로 옮겨 신축되었다.
1959년 원구단 황궁우. 현재는 조선호텔이 들어서있다.
1959년 명동거리의 세련된 차림의 외국여성들과 한국여성
1959년 중랑천 둔치에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
푸른날개 ~~ 박재란
아무리 서러운 슬픔이 많아도
가슴을 털어놓고 노래합시다
하늘도 푸르고 마음도 즐거워
청춘의 푸른 날개여
비둘기 훨훨 날개를 치며
꾸룩꾸룩 꾸룩꾸룩꾸룩 사랑을 합니다
우리의 청춘도 다같이 춤추며
청춘의 푸른 날개여
날마다 괴로운 시름이 닥쳐도
우리가 서로서로 위로합시다
산너머 산이요 강건너 강이요
젊음의 푸른 날개여
양떼가 고개 넘어가면은
음매음매 음매음매 노래를 합니다
대지의 꽃들이 생긋이 반기는
청춘의 푸른 날개여
우리네 가정에 고생은 있어도
다같이 힘을 모아 노력합시다
해돋는 천지에 무궁화 핍니다
희망의 푸른 날개여
깃발이 펄펄 창공에 날아
펄럭펄럭 펄럭펄럭 힘차게 날린다
청춘의 앞날에희망이 찬란한
청춘의 푸른 날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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